공자 가라사대 ‘바른 정신의 주인이 되지 못하면, 바라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고 하였다.
대식가(大食家)는 술·음식의 맛을 구별하지 못하고 질보다는 양을 중시하므로 자극적인 맛을 탐닉한다. 식탐이 인간의 혀를 혹사시켜 맛의 예술을 어지럽히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반면에 참된 맛을 아는 미식가(美食家)는 입으로 들어오는 술·음식이 인간을 추하게 만들거나 또는 고귀하게 한다는 자명한 이치를 알고 있기에 결코 대식가가 될 수 없다.
나는 식성이 유난스레 까다로운 것은 아니라서 필요하다면 구두 밑창이라도 튀겨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너그러운 편이지만 술과 음식에 대한 절제를 미덕으로 여긴다.
술을 거칠게 마시면서 취하고 싶어 하는 그 기분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인정한다. 그것은 나도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천박해졌기 때문이지 성품이 너글너글하게 변했다거나 현명하게 처신하기 위한 계산은 아니다.
술은 그다지 고귀한 음료가 아니어서 취기의 한도가 끝이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측면에 대해서는 유별나게 탓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지나치게 먹고 마시는 것은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절주의 실천을 위한 계영배(戒盈杯)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술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호주객(好酒客)이 혼돈에 빠져 취기를 즐기니 유감스러울 뿐이다. 술이 발단(發端)이 되어 생긴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 우정·사랑·평화의 세상을 파멸로 몰아갈 수도 있어 염려가 된다.
정녕 취할 생각이라면 희망의 불꽃위에 술잔을 끼얹는 어리석음을 멈추고, 술(alcohol)이 아닌 예술(藝術)에 취해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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