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파(世波)를 넘나들며 가솔(家率)들의 생존을 위한 보급투쟁에 매진하다가 늙고 지친 몸으로 안전하다고 생각되어지는 곳[가정]으로 복귀한 자. 그는 아버지, 가장(家長)이라고 불린다.
한동안 사냥능력이 좋았던 시절에는 절대적인 권위로 가족을 대표하고 집안의 질서를 유지하며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느라고 자신의 삶을 희생하였으나, 사냥을 끝내고 은퇴하여 집에 돌아오면 가족의 무리 속에서 겉도는 처지가 된다. 자신이 가족에게서 용도 폐기된 사람이라는 현실을 인지하는데 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젊은 시절, 돈다발을 흔들며 호기롭게 집으로 돌아오던 마초적인 아버지의 모습에 익숙해진 자식들은 세월의 파고를 넘지 못해 경제능력을 상실한 아버지에게 등을 돌리고 각자 자신의 방에서 생활하니 하루 종일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는 날이 많아진다. 냉정하게 보면 늙은 아버지는 의지할 대상도 아니고 효용가치도 없으니 점점 짐이 되어가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당연히 돈 없고 건강하지 못하고 재미없는 아버지를 망각의 늪 속에 던져 버리고 평안함을 찾아 떠나거나, 아니면 자신의 주변에서 제거해 버리고 싶은 심리상태이지만 실질적인 행동으로 패륜의 짓을 할 수 없는 가솔(食率)들의 고단함도 헤아리지 않을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누구를 탓하기도 만만치 않다. 소처럼 일만하느라 아무 것도 해보지 못한 아버지는 인생을 즐기는 방법조차 모른다. 가솔들을 먹여 살리는데 올인 하느라 딴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은퇴하여 여유시간이 많으니 여행도 하고 싶고, 취미로 음악도 하고 싶고, 운동도 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른다. 즐겁게 노는 방법을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학교에서조차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배운 것은 오로지 '근면 성실' ! 놀 줄을 모르니 집안에 처박혀 세끼 밥만 축내면서 사소한 일에 화내고 잔소리가 많아지니 식구들도 지쳐가고 짜증을 내게 된다.
용도 폐기된 자. 아버지-가장(家長)-
그는 그렇게 서서히 외톨이가 되어가는 것이다.
△ 석성산(石城山) 올라 생각하다.
서울 남산에서 남으로 직선거리 40km , 높이 471.5m , 서기 475년 축성.
1500여년 전에 고구려의 장수왕이 백제의 개로왕을 죽이고 남하하면서 쌓은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은 별다른 흔적 조차 없는데 그분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죽고 죽이며 싸웠을까?
긴 세월 속에서 보면, 사람이 잠시 살다 떠난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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