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누구냐? Ⅰ
우리는 인생여정에서 학생·회사원·공무원·모임회장·회사대표 등등 각 단계에서 맡은 직책 또는 사회적 위치에 따라 자기의 역할(役割)을 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역할놀이'가 끝나면 진정한 나와 마주할 기회인데 단 한번 지방의회 의원했다고 평생 의원님으로 불러주길 원하는 사람도 있고, 퇴직한 후에도 계속 교수라는 이미지를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특정한 이미지(Image)에 매어 있지 않을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으니 변화를 인정하고 모든 조건과 지위를 다 떼어내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빛나야 한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어떤 이는
한 때 제법 괜찮은 회사의 대표이사 사장이었지만
지금은 2선으로 물러났으니 제발 사장이라고 부르지 말라 한다.
그럼, 그는 누구냐?
버스 타면 승객,
식당가면 손님.
책 읽을 땐 독자,
글 쓸 땐 작가,
길 가면 행인이고,
여행지에선 관광객이고,
술 마실 땐 호주객이고,
그냥 태평한 늙은이일 뿐이다.
겸손하게 바닥을 기며 벌레로 사는......
너는 누구냐? Ⅱ
세상이 내 앞을 가로막고 물었다.
누구신가요?
[松巖이라고 하오.]
이름이 뭐냐고 묻는 게 아니라 당신이 누구인지 묻는 거예요.
[평범한 회사인(會社人) 입니다.]
당신의 직업을 묻지 않았어요. 당신은 누구시죠?
[지구인들의 친구요.]
누구의 친구냐고 묻지 않았어요. 당신은 누구시죠?
[한양성 한 모퉁이에서 유유자적 사는 사람이요.]
주소를 묻지 않았어요. 당신은 누구시죠?
결국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나는 누구인가?' 해답을 찾기 위해 세상으로 나섰다.
松巖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대체 무엇입니까?
몸뚱아리가 松巖입니까? 마음이 松巖입니까?
그 어떤 것도 절대적이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몸도 마음도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
현재의 나에 집착하지 말고 '나를 내려 놓으라'는 가르침으로 귀결인가.
나는 대관절 누구인가?
왜 나에게 이름·주민등록번호만으로 신분을 밝히길 요구할까?
왜 나 자신의 다름을 다르게 인정받기가 그리도 어려운 걸까?
그럼 도대체 나는 누구냐고?
나의 성격은 늘 변화하니 딱히 무어라 말하기가 어려우며,
나의 재주와 능력은 미미하여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니
내게 온 인연을 그저 조용히 따를 뿐이나 언젠가는 떠나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사람일까?
우리는 당연히 같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과학적으로는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인간의 피부세포는 시간당 3~4만개가 죽는다. 그 결과 매년 3.6kg의 피부세포가 떨어져 나간다.
아무리 집을 깨끗이 청소해도 일주일 지나면 허연 먼지가 쌓인다. 허연 먼지는 다름 아닌 피부이다.
피부세포만이 아니다. 창자세포는 2~3일에 한 번 바뀌고 허파세포는 2~3주에 한 번 바뀐다.
적혈구세포는 4개월에 한 번, 간세포는 5개월에 한 번 바뀐다.
이런 식으로 우리 몸 안에 있는 모든 세포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100% 바뀐다.
나라는 존재가 나의 몸이라면 1년 전의 나는 더 이상 지금의 나가 아니라는 뜻이다.
1년 사이 100% 바뀌어 똑같은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나는 나'라고 생각할까? 변하지 않는 것이 단 하나 있기 때문이다. 바로 뇌세포이다.
우리는 2kg도 되지 않는 뇌를 갖고 태어나 죽을 때까지 살아간다.
-김대식의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나는 어떻게 나일 수 있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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