慈遊到人(자유도인)

松巖 吾,謙螙. 무엇을 사유(思惟)하며 사는가?

만필 잡록(漫筆雜錄)

★ 일상적 사유(思惟)

☆ 너는 누구냐?

松巖/太平居士 2019. 8. 20. 11:31

너는 누구냐?

 

우리는 인생여정에서 학생·회사원·공무원·모임회장·회사대표 등등 각 단계에서 맡은 직책 또는 사회적 위치에 따라 자기의 역할(役割)을 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역할놀이'가 끝나면 진정한 나와 마주할 기회인데 단 한번 지방의회 의원했다고 평생 의원님으로 불러주길 원하는 사람도 있고, 퇴직한 후에도 계속 교수라는 이미지를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특정한 이미지(Image)에 매어 있지 않을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으니 변화를 인정하고 모든 조건과 지위를 다 떼어내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빛나야 한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어떤 이는

한 때 제법 괜찮은 회사의 대표이사 사장이었지만

지금은 2선으로 물러났으니 제발 사장이라고 부르지 말라 한다.

그럼, 그는 누구냐?

버스 타면 승객,

식당가면 손님.

책 읽을 땐 독자,

글 쓸 땐 작가,

길 가면 행인이고,

여행지에선 관광객이고,

술 마실 땐 호주객이고,

그냥 태평한 늙은이일 뿐이다.

겸손하게 바닥을 기며 벌레로 사는......

 

 

너는 누구냐?

 

세상이 내 앞을 가로막고 물었다.

누구신가요?

[松巖이라고 하오.]

이름이 뭐냐고 묻는 게 아니라 당신이 누구인지 묻는 거예요.

[평범한 회사인(會社人) 입니다.]

당신의 직업을 묻지 않았어요. 당신은 누구시죠?

[지구인들의 친구요.]

누구의 친구냐고 묻지 않았어요. 당신은 누구시죠?

[한양성 한 모퉁이에서 유유자적 사는 사람이요.]

주소를 묻지 않았어요. 당신은 누구시죠?

 

결국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나는 누구인가?' 해답을 찾기 위해 세상으로 나섰다.

松巖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대체 무엇입니까?

몸뚱아리가 松巖입니까? 마음이 松巖입니까?

그 어떤 것도 절대적이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몸도 마음도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

현재의 나에 집착하지 말고 '나를 내려 놓으라'는 가르침으로 귀결인가.

 

 

나는 대관절 누구인가?

왜 나에게 이름·주민등록번호만으로 신분을 밝히길 요구할까?

왜 나 자신의 다름을 다르게 인정받기가 그리도 어려운 걸까?

그럼 도대체 나는 누구냐고?

나의 성격은 늘 변화하니 딱히 무어라 말하기가 어려우며,

나의 재주와 능력은 미미하여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니

내게 온 인연을 그저 조용히 따를 뿐이나 언젠가는 떠나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사람일까?

우리는 당연히 같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과학적으로는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인간의 피부세포는 시간당 3~4만개가 죽는다. 그 결과 매년 3.6kg의 피부세포가 떨어져 나간다.

아무리 집을 깨끗이 청소해도 일주일 지나면 허연 먼지가 쌓인다. 허연 먼지는 다름 아닌 피부이다.

피부세포만이 아니다. 창자세포는 2~3일에 한 번 바뀌고 허파세포는 2~3주에 한 번 바뀐다.

적혈구세포는 4개월에 한 번, 간세포는 5개월에 한 번 바뀐다.

이런 식으로 우리 몸 안에 있는 모든 세포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100% 바뀐다.

나라는 존재가 나의 몸이라면 1년 전의 나는 더 이상 지금의 나가 아니라는 뜻이다.

1년 사이 100% 바뀌어 똑같은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나는 나'라고 생각할까? 변하지 않는 것이 단 하나 있기 때문이다. 바로 뇌세포이다.

우리는 2kg도 되지 않는 뇌를 갖고 태어나 죽을 때까지 살아간다.

-김대식의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나는 어떻게 나일 수 있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