慈遊到人(자유도인)

松巖 吾,謙螙. 무엇을 사유(思惟)하며 사는가?

만필 잡록(漫筆雜錄)

★ 일상적 사유(思惟)

☆ 잔혹 동시(童詩) 논란에 관한 생각

松巖/太平居士 2015. 5. 8. 11:53

10세의 초등학교 여학생이 낸 시집 '솔로강아지'에 실린 시(詩) 들을 보자.

 

 

<솔로 강아지>

 

우리 강아지는 솔로다

약혼 신청을 해 온 수캐들은 많은데

엄마가 허락을 안 한다

 

솔로의 슬픔을 모르는 여자

인형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우리 강아지

 

할아버지는 침이 묻은 인형을 버리려한다

정든다는 것을 모른다

 

강아지가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있다

외로움이 납작하다

 

<솔로 강아지>라는 동시의 마지막 줄에 '외로움이 납작하다'라는 표현에 감동했다.

 

<도깨비>

 

어둠은 빛난다

 

긴 혓바닥을 내밀고

뿔을 어루만진다.

 

왈왈 짖어댈 때마다

현실이 뒤집어진다

 

아름답게

부럽게

 

어둠은 무엇이든 다 만든다

그리고 모른 척한다

 

 

<학원가기 싫은 날>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이렇게

 

엄마를 씹어 먹어

삶아 먹고 구워 먹어

눈깔을 파먹어

이빨을 다 뽑아 버려

머리채를 쥐어뜯어

살코기로 만들어 떠먹어

눈물을 흘리면 핥아 먹어

심장은 맨 마지막에 먹어

 

가장 고통스럽게

 

 

10세 초등학교 여학생이 지었다는 동시가 잔혹하다고 세상이 시끄럽다.

하지만 도덕적인 잣대가 아닌 사회적인 현상과 문학적 관점에서 평가해 봄직도 하다. 어린이의 입장에서 느낀 부조리하고 각박한 현실을 풍자한 작품성 있는 훌륭한 시(詩)라고 생각한다.

풍자(諷刺)란 문학작품 따위에서, 사회의 부정적인 현상이나 인간들의 결점, 모순 등을 빗대어 비웃으면서 비판하는 것이다.

어른들은 삼삼오오 모이면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을 맛있게 씹는다.

부러워할 만한 업적이 있는 사람, 변변치 못한 사람, 위정자(爲政者), 인기인, 직장상사, 친구, 선후배 가리지 않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수다를 떤다. 술이 있는 자리라면 험한 쌍욕까지 하는데 액면대로 보면 잔혹하고 엽기적인 단어들이 줄줄이 튀어 나온다. 식인종도 아니면서 씹어 먹겠다고 말하는데 잔인하다고 나무라는 사람도 없다. 표현은 과하지만 악의는 없는 놀이의 일종이고 풍자와 비유로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10세 초등학교 여학생의 '학원가기 싫은 날' 이라는 시 또한 암울한 현실을 비판한 문학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생물학적인 엄마를 해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무시하고 모든 걸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엄마의 행위'를 마음속에서 축출하고 동심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뛰어 놀고 싶다는 상상을 압축적으로 諷刺(풍자)한 시(詩)이다.

어린이도 어른을 나무랄 권리는 있지 않은가?

 

아이들은 동심으로 자연 속에서 놀아야하는데 어른들의 과한 욕심으로 일방적인 가치관만을 주입하는 잔혹한 세계에 갇히어 사육(?)되어 지고 있다.

교육의 목표가 인성교육 임에도 불구하고, 학교교육은 사회의 소모품을 양산하는 공장으로 전락하여 출세를 위한 경쟁방법 만을 가르치다보니 배려는 없고 돈만 아는 승자독식의 천박하고 몰상식한 사회가 되었다.

 

시 한수 더 볼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친구들과 내기를 했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말하기

 

티라노사우르스

지네

귀신, 천둥, 주사

 

내가 뭐라고 말했냐면

엄마

그러자 모두들 다같이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엄마라는 말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불멸의 사과>

 

죽은 후 남들이 욕할까 봐

살아서 하고 싶던 것을 영원히 못할까 봐

내 사랑 일 순위 순둥이를 못 볼까 봐

죽음이 두려워진다

 

사과를 먹다 숟가락으로 두두리며 염불을 외운다

나무아미 나무아미 나무아미타불

 

둥둥 사과가 북소리를 낸다

사과도 죽기 싫은가보다

먹히는 게 싫은가 보다

 

 

<싱싱한 눈알>

 

감긴 눈을 좋아한다

눈꺼풀 뒤에 있는 눈알을 상상하는 것이 좋다

 

보이지 않는 눈알

모든 것 뒤에서 팔딱거리고 있다

 

하얀 동그라미 안에

검은 동그라미 안에 또

검은 동그라미

 

 

잔혹 동시 논란이 엉뚱하게 종결됐다.

일부 크리스천들이 '사탄의 영'이 지배하는 책이라고 한 우려를 받아들여 전량폐기 했다.

만일 '사탄의 영'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이 동심까지 지배하고 있다면,

2000여 년간 해결하지 못한 크리스천들의 직무유기 또는 무능이던가 아니면

'순진한 동심' 같은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대판 '분서갱유(焚書坑儒)'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