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동양과 서양이 어우러진 역사적인 유적지가 매력적이며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로 인기가 많은 여행지
수도 : 앙카라
최대도시 : 이스탄불
시차 : 한국과 –6시간차
언어 : 튀르크어, 아랍어, 쿠르드어
통화 : 튀르키예 리라
전력전압 : 220 / 230 / 240V 50Hz 콘센트 2구
팁 금액 : 호텔 1달러 , 레스토랑 이용금액의 5~10%
무비자 입국 : 양국 모두 90일
역사 : 유목시기 / 정주시기 / 근현대시기
유목시기 ;
흉노(몽골)
돌궐 제국
서돌궐 제국
강거 연맹
오구즈
오구즈 야브구국
정주시기 ;
셀주크 제국
룸 술탄국
아나톨리아 베이국
근현대시기 ;
오스만 제국
튀르키예 공화국
기후 : 사계절이 뚜렷
봄과 가을에 비가 많이 내리는 편(1년 중 비가 가장 많이 오는 달은 4월 / 비가 가장 내리지 않는 달은 9월 / 12월에서 2월 사이 가장 많은 눈)
튀르키예 여행하기 좋은 계절은 여름으로 6월에서 8월 사이가 가장 좋은 시기(기온은 약 21~23도)
여름철에 비해 관광객 수가 줄어드는 5월이나 9월이 적당
비행시간 : 대략 12시간 정도 소요
튀르키예 여행 시 주의사항 :
√ 이슬람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에 방문자들은 적절한 옷차림을 준비
√ 다양한 음식과 문화를 가진 나라이므로 현지 음식을 즐기되 길거리 음식을 섭취할 때는 위생 상태에 주의
√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충분한 물과 자외선 차단
√ 현지의 관습과 법률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
√ 단체 여행이 바람직하며, 혼자 여행하는 경우에 여행지 안내를 제안하거나 식사나 술을 함께 할 것을 요구하는 현지인들에게 단호하게 거부 의사를 표현하여야 하며, 과도한 친절이라고 생각되는 일에는 아예 응대하지 않음으로써 불필요하게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신변안전에 유의하고, 모르는 사람이 제공하는 음료수는 마시지 말기
√ 이스탄불, 앙카라, 이즈미르 및 인구가 높은 도시에서 간헐적으로 테러사건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시위대 등이 있을 경우 신속히 현장에서 벗어나 신변안전에 유의
음식 :
√ 케밥(Kebab) : 재료에 상관없이 구운 요리는 모두 케밥에 속하며, 터키의 대표 음식
√ 시미트(Simit) : 참깨가 뿌려진 둥근 빵으로 터키식 홍차인 차이(çay)와 어울린다
√ 괴프테(Köfte) : 다진 고기에 각종 채소와 양념을 넣은 후 한입 크기로 뭉쳐서 구워낸 음식
√ 괴즐레메(Gözleme) : 밀가루 반죽에 각종 채소와 치즈를 넣어 구워내는 음식으로 한국의 빈대떡과 비슷
√ 라흐마준(Lahmacun) : 얇게 핀 밀가루 반죽에 곱게 간 양고기와 채소, 각종 양념을 토핑한 후 화덕에 구워낸 음식
√ 피데(Pide) : 터키의 전통 납작빵으로 피자라고 보면 됨
√ 쿰피르(Kumpir) : 구운 통감자를 반으로 가른 후 치즈, 요구르트, 각종 과일, 채소, 옥수수, 피클 등을 취향대로 얹어서 먹는 요리
√ 로쿰(Lokum) :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젤리로 터키의 전통 디저트
√ 아이란 : 수제 요구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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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그네 吾謙螙의 유람 여정 (遊覽 旅程) ☆
목표와 방향이 있는 사람은 巡禮者(순례자) !
목표와 방향이 없는 사람은 遊覽人(나그네) !
아득한 길을 걸어가는 순례자로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유유자적 즐기며 걷는 나그네로 사시겠습니까?
- 慈遊到人 吾,謙螙. -
여정(旅程) ;
★1 이스탄불 → ★2 카파도키아 → ★3 콘야 → ★4 안탈리야 → ★5 파묵칼레 → ★6 쉬린제 → ★7 에페소 → ★8 부르사
★ 1
▣ 이스탄불(Istanbul)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가 되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끼고 위치하며 세계를 지배한 로마, 비잔틴,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으며 2,000년이 넘는 역사에 걸맞게 동서양 문화와 상업의 교류지로서 역할을 하였다.
동서양이 절묘하게 조화된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1,20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신비함이 깃든 도시이다.
성 소피아 박물관(성 소피아 성당 St. Sophia Cathedral)
현재 성 소피아 박물관이라는 정식 명칭을 가지고 있지만 최초에는 성당이었다. 성 소피아 성당은 마치 이스탄불의 여느 모스크와 비슷해 보이며, 마주 보고 있는 블루 모스크와 아주 흡사하다.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던 성 소피아 성당은 오늘날까지도 비잔틴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성당의 중앙에 서면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공존하는 기묘한 장면이 연출되는 역사적인 장소임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블루 모스크(Blue Mosque, SULTAN AHMET MOSQUE)
오스만 시대에 지어진 술탄아흐멧 모스크는 규모 면에서 터키 최대로 맞은편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에 대한 이슬람 세력의 우위를 상징하기 위해 그 양식을 모방 발전시켜 건축한 회교사원이다. 건물 내부의 벽과 기둥이 푸른색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어 블루 모스크라고 한다.
돔의 200개가 넘는 조그만 창은 스태인드 글래스로 장식되어 있어 이를 통해 들어오는 아름다운 햇살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히포드럼(Hippodrome)
로마의 황제 세비루스에 의해 지어진 검투장이었는데 4세기 무렵 비잔틴 황제인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검투경기는 금지되고 마차경기장으로 바뀌었다. 경마장 뿐 아니라 왕위 계승을 놓고 벌어진 전쟁터가 되기도 했으며 13세기 십자군과 비잔틴군의 접전으로 광장 내 많은 유적이 파괴되었다.
오벨리스크는 기원전 1550년에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여 파라오에게 헌사한 사원에 세워졌던 오벨리스크 중 하나로 당시 왕족들의 일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외에도 콘스탄티누스의 기둥이라고 알려진 오르메 수툰, 아폴로 신전에서 가져온 세 마리의 뱀이 서로 뒤엉켜 황금 그릇을 받치고 있는 형상의 서펜타인 기둥이 있다.
톱카프 궁전
보스포러스 해협 언덕에 위치하여 안쪽으로 들어가면 바다와 이스탄불 시내 전경을 감상 할 수 있다.
1453년 오토만 제국의 술탄인 메흐멧이 이스탄불을 차지하게 되면서 처음 건설되어 그후 4세기 동안 꾸준히 그 규모를 확장시켜 나갔다. 약 70만평이 넘는 궁전 안에는 보석, 장식품, 시계, 도자기 등을 전시 해 놓은 소규모 박물관과 가든, 레스토랑 등이 있다.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r 지붕이 있는 시장이란 뜻)
비잔틴 시대부터 현재 그랜드 바자르가 있는 장소는 무역의 중심지였다. 이후 튀르키예가 이스탄불을 장악하게 되면서 1455-1461년에 걸쳐 도시의 경제를 부강하게 만들 목적으로 두 개의 아케이드가 만들어졌고 활발한 상업활동을 위해 주 아케이드의 바깥 부분까지 영역을 확대시켜 나갔다. 오토만시대를 거치면서 지진, 화재 등으로 여러 차례 소실되었지만 몇 번의 복구 끝에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4천개 이상의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터키의 관광명소로 손꼽힌다.
이스탄불 예레바탄 사라이
외부의 공격이 많았던 이스탄불에 충분한 물공급을 위해 비잔틴 제국시대에 만들어진 지하 저수저 중 가장 크고 화려한 지하궁전이다. 길이 140m, 폭 70m, 깊이 8m, 지붕을 떠받치는 336개 석주 아래 최대 8만 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 당시 적이 잠입해 독을 풀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저수조에 키웠다는 팔뚝만 한 물고기 떼가 지금도 무리 지어 수조 속을 유영하고 있다. 저수지 기둥 받침 중에 메두사 머리도 그에 얽힌 신화 속 이야기가 흥미롭다.
피에르 롯티 언덕(Pierre Loti Hill)
피에르 롯티 언덕은 프랑스 작가 피에르 롯티가 이 언덕에서 애플티를 마시며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글의 영감을 얻은 장소라고 전해지는 곳이며 주위가 공동묘지이다.
피에르 로티 (Pierre Loti, 1850년 1월 14일 ~ 1923년 6월 10일) 는 프랑스 해군 장교인 동시에 소설가로 본명은 줄리앙 비오 (Julien Viaud)이다. 1867년 브레스트 해군사관학교를 졸업 후 해군 장교로서 세계의 바다를 두루 돌아다녔고 섬세하고 다감한 필치로 여러 곳의 풍물과 이국 여성과의 사랑을 엮은 특이한 문학을 구축하였다.
돌마바흐체 궁전
튀르키예어로 '뜰로 가득 찬'이라는 뜻인 '돌마바흐체'라는 이름이 붙은 화려한 석조 건축물로 보스포루스 해협의 유럽 쪽 해안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 궁전이다. 19세기 중엽인 1843~1856년에 술탄 압뒬메지트 1세(Abdülmecit I)에 의해 지어졌다. 이 궁전은 튀르키예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가 1938년 11월 10일 숨을 거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업무 도중에 이곳에서 사망하였는데, 궁전 안에 있는 모든 시계는 아타튀르크가 사망한 9시 5분에 멈춰 있다.
보스포러스 해협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해협으로 흑해와 마르마라해를 연결하고 있다. 길이가 약 30km, 넓은 곳의 폭이 3500m, 좁은 곳이 700m로 물 흐름이 세차서 여기저기에 소용돌이가 치고 있다. 양측 해안에는 고대 유적지, 그림같이 아름다운 전통적인 터키 마을, 울창한 숲 등이 곳곳에 있어 장관을 연출하고 있으며 음식점, 찻집, 별장 등이 있는 매우 조용한 곳이기도 하다. 고대, 중세만 해도 지중해와 흑해 간의 거의 모든 상거래는 이 해협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국제무역에 있어 보스포러스 해협의 중요성은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져 매년 38,000여 척의 배들이 이곳을 통과하고 있다.
★ 2
▣ 카파도키아(Cappadocia)
자연의 경이로움을 절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수도인 앙카라에서 남쪽으로 300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카파도키아는 마치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갖가지 버섯 모양의 기암괴석들이 드넓은 계곡지대에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카파도키아의 참 매력은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 원뿔을 엎어 놓은 듯한 용암층 바위 속에 이 곳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삶의 터전을 마련해두고 있는 것이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
카파도키아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버섯 모양의 바위들과 이를 이용하여 만든 집들, 교회들이 모여있는 야외 박물관이다. 정확한 건립 연도나 건립자를 알 수 없으나, 대부분 5~12세기 로마와 이슬람의 핍박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모여들어 만든 것으로 보인다. 1년 365일에 해당되는 365개의 동굴 교회가 있었다고 하며, 이중 30여 개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다.
버섯바위 파샤바
괴레메와 아바노스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파샤바계곡은 버섯모양을한 바위들로 형성된 계곡이다. 화산활동과 비바람으로 모양이 형성되었고 바위의 모습은 각 지층마다 경도와 성분이 다르기에 현재의 모습처럼 다르게 깎였다. 고대 수도사 성 시메온이 이곳에 살았기 때문에 기독교적으로 수도사의 골짜기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하나의 몸통에 세 개의 봉우리가 있는 세쌍둥이 버섯 바위가 있는데 이곳의 대표적인 기둥이며 삼위일체 바위라고도 한다.
우츠히사르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높은 우츠히사르라 불리는 바위산은 그 자체로 성채의 중심이 되고 있으며 옛날 수도사들이 바위를 파서 벌집 형태의 집을 지어 살았다. 성채의 내부로 올라가서 바라보는 괴레메의 파노라마는 가히 장관을 이룬다. 7세기 후반 이슬람교의 탄압을 피해 기독교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거주하였고 11세기 무렵 수만의 인구가 살았다.
데린구유(Derinkuyu)
카파도키아를 더욱 경이롭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최대 3만명까지도 수용이 가능한 대규모 지하 도시이다. 이곳의 형성시기에 관한 정확한 자료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본격적인 확장기는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에 들어와 교육기관과 교회, 와인 저장고 등을 축조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작은 규모의 마을부터 거대한 도시에 이르기까지 총 40여개에 달하는 거주지가 발굴되었으나 오늘날 일반인에게는 소수만이 공개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 중 하나가 카파도키아에 위치한 데린구유 지하도시이다.
투라산 와이너리(TURASAN)
와인의 역사가 무려 7천 년이 넘는다고 한다. 긴 역사만큼 튀르키예에는 600종이 넘는 토착 품종이 자라고 있다. 카파도키아 내륙 깊숙하게 자리 잡은 아나톨리아 지방은 그 위치 때문에 강한 대륙성 기후를 보이는 지역이지만 이 고원을 관통하는 키질이르마크강이 대륙성 기후를 원만하게 조율을 해주어 양질의 신선한 레드와인을 주로 생산한다. 특히 투라산(TURASAN) 와이너리는 현재 3대째 가업을 계승하며 경영되고 있는 와이너리로 카파도키아 와인의 주요 생산지이기도 하다.
★ 3
▣ 콘야(Konya)
과거 이고니온이라 불렸던 콘야는 11세기 셀주크터키의 수도였으며, 튀르키예의 중요 도시 중 하나이다. 내륙에 있는 고원 도시이며, 지중해로부터 250KM 흑해로부터는 500KM, 수도인 앙카라에서는 남쪽으로 250KM가 떨어져 있다. 콘야에서는 주로 카펫과 가죽을 생산하며, 광물 산업도 있다. 11세기 셀주크터키의 수도로 정해진 이후 크게 번성하였고, 이때 많은 학자들과 예술가들이 콘야로 몰려들었다. 지금 남아있는 역사적인 경관들은 그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많고 그중에서도 메블라나 박물관과 마나레 신학교가 가장 유명하다.
메블라나 박물관(Mevlana Museum)
푸른 원추형의 탑이 아름다운 메블라나 박물관은 메블라나 루우미가 교파를 세운 이래 1923년까지 메블라나교에서 성당과 사원등으로 사용하였다. 그 후 1923년 터키에서 반종교정책이 채택되어 왕정의 절대지지 세력이었던 메블라나 교단은 철퇴를 맞게 되어 교단은 해체되고 메블라나 사원은 폐쇄되었다.
6,500평방미터의 부지 내에 성당과 사원, 수행장소등이 정갈하게 자리잡고 있는 메블라나 박물관은 1927년이 되어서야 성당으로 쓰였던 장소만 박물관으로 문을 열게 된다. 이런 상황은 1950년까지 이어지다가 1950년에 행해진 메블라나 추모행사로 부활을 맞는다.
★ 4
▣ 안탈리야
기원전 159년 페르가몬의 왕 아타로스 2세가 고대 팜필리아라고 불리던 곳에 아타레이아를 건설하면서 처음 자리를 잡은 도시다. 비잔틴과 셀주크를 거쳐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에게 잠시 땅을 빼앗기기도 했지만 다시 터키 공화국으로 편입되었다.
야자나무 가로수와 요트들이 늘어서 있는 마리나 항구의 모습이 특히 아름다워 휴양과 관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도시로 사랑받고 있으며 인기 리조트들이 들어서 있는 지중해 최대의 관광 도시이다.
안탈리야 구시가지
성을 뜻하는 칼레(kale)와 안을 뜻하는이치(iç)가 결합해 "칼레이치(성안)"이라는 의미를 가진 곳으로 구시가지라고 불린다. 헬레니즘, 로마, 비잔틴, 셀축, 오스만시대에 걸쳐 완성된 4.5km의 성벽 내부에는 하드리아누스의 문을 비롯하여 이블리 미나레(이블리 첨탑), 케식 미나레(케식 첨탑), 시계탑, 흐드르륵 칼레와 3천 여채의 전통 가옥들이 위치하고 있다.
하드리아누스의 문(Hadrian's Gate)
하드리아누스를 기리기 위한 하드리아누스의 문(Hadrian's Gate)은 기원전 2세기에 세운 장식용의 대리석 아치로 로마시대의 영광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 중에 하나이다. 130년에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이 도시를 통치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건축물이며, 고대 팜필리아 지방에서 가장 볼만한 명소로 유명하다. 이 건축물의 용도는 과거 성벽의 출입구중 하나의 역할을 했으며, 지금은 구시가지로 들어가고, 나가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블리탑
'틈이 있다'는 뜻의 탑으로 푸른 빛이 감돌기로 유명한 이블리탑은 안탈랴의 상징으로 구시가지인 칼레이치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13세기 셀주크투르크의 술탄이었던 알라에딘케이바트가 세운 이블리탑은 모스크에 딸린 미나렛이었다. 하지만 현재 이슬람 사원은 없어지고 높이 38m의 첨탑만 남아 도시의 상징물처럼 되어있다.
★ 5
▣ 파묵칼레
터키어로 ‘목화의 성’이라는 뜻의 파묵칼레는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기이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예전에는 이곳을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의 히에라폴리스라고 불렀다. 페르가몬의 시조인 텔레포스의 아내 히에라의 이름을 딴 것이다.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파묵칼레 언덕 위에 세워진 고대도시이며, 기원전 190년에 페르가몬의 왕조였던 유메네스 2세에 의해 처음 세워져 로마 시대의 온천지로서 2,3세기에 가장 번영했던 고대 도시 중 하나이다.
기원전 130년에 이곳을 정복한 로마인은 이 도시를 ‘성스러운 도시(히에라폴리스)’라고 불렀다. 그리스어 ‘히에로스’는 신성함을 뜻한다. 고대 15만명의 인구가 거주했던 대도시였지만, 지진으로 모두 소멸했고, 현재는 15,000석 규모의 원형극장만 복원한 상태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유적을 동시에 갖춘 이곳은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석회봉
석회붕 지역은 온천수에 일정부분 섞여있는 화산성 물질인 유황 석회등이 원료가 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순백색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중국의 구채구 처럼 에메랄드빛 물이 아름답게 빛나는데 가장 아름다운 몇몇 구간을 훼손을 막기 위하여 엄격하게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6
▣ 쉬린제
에페소스(Ephesos) 지역에 거주하던 그리스인들이 15세기 무렵에 이주해와 형성한 마을이다.
현재 주민은 약 600명이며 대부분이 그리스계이며 셀추크의 '와인마을'로 알려져 있다. 산비탈을 따라 조성된 마을의 모든 건물이 흰 회벽에 붉은 기와지붕을 하고 있으며 그리스풍으로 꾸며져 있다. 특산물로는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올리브 제품, 포도주, 포도, 사과, 복숭아를 이용한 과실주, 수공예 레이스 등이 있다.
★ 7
▣ 에페소(Ephesos)
튀르키예 서부의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이즈미르주의 카이스트로스강 어귀에 있던 고대 그리스의 식민 도시 유적이다. 에페소는 고대 그리스의 식민 도시로 건설되어 소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상업 요충지로 번성하였다. 기원전 6세기 후반에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일시 쇠퇴하였다가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된 뒤 새로운 에페수스가 건설되면서 헬레니즘 도시로 부흥하였다. 기원전 2세기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아시아 속주의 수도로서 지중해 동부 교역의 중심지가 되어 전성기를 누렸으며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도시로서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에페소 원형극장(Efes Theatre)
2만 5천명 이상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세계에서 가장 큰 원형 극장 중의 하나이며 헬레니즘 시대에 처음 만들어졌다고 하나 현재 남아있는 것은 서기 1-2세기경의 유적이다.
3단 구조의 이 원형극장의 각 단은 22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높이가 18미터에 달하는 이곳의 실내 정면은 각종 부조와 원주, 창으로 장식되어 있고 약 25,000석 규모의 경기장은 무대에서 관중석 끝까지 목소리가 전달 될 수 있도록 건축 설계가 되어있어 실제 관광객들의 음성이 맨 위층까지 또렷이 들린다. 당시 연극 및 검투사 경기가 이루어진 곳으로 현재도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셀수스 도서관(Celsus Library)
에페소 유적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 중 하나로 손꼽히는 셀수스 도서관은 전면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어 당시에는 얼마나 화려했을까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여러차례 훼손되었으나 최근에 재건되었고 높은 초석 위에 세워진 이 건축물은 넓은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셀수스 도서관은 서기 135년, C. Aquila에 의해 아시아 지역의 통치자였던 그의 아버지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Celsus Polemaeanus)를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 이 도서관에는 세개의 문이 있는데 각각의 상단은 지혜, 운명, 지식을 상징하는 정결한 여성상들로 장식되어 있다.
★ 8
▣ 부르사(Bursa)
부르사의 인구는 185만명이고 마르마라 권역 남동쪽 내륙에 위치한다. 울루닥 산(Mount Uludag) 북서쪽 낮은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는 부르사의 도시명은 비티니아(Bithynia)의 왕이었던 Prusias의 이름에서 파생된 것이다. B.C 74년 비티니아의 마지막 왕이었던 니코메데스 4세가 왕권을 로마에 넘겨줄 때까지 부르사에 대한 비티니안의 지배는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 후 1326년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첫 번째 수도가 되었다. 그래서 아직도 이 도시에는 오스만투르크식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파노라마 1326
1326년은 오스만 제국이 부르사를 점령한 후 수도를 세운 해이다. 파노라마 1326 박물관은 오스만 제국의 부르사 점령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또한 이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파노라마 박물 관 중 하나로, 박물관의 3층에 이르게 되면 커다란 파노라마 돔 한가운데서 1326년으로의 시간 여행이 시작된다.
톱하네 시계탑
브루사의 톱하네 공원에는 약 25m의 높이 솟아 있는 시계탑이 있다. 최초에는 부르사 시가지의 화재를 감시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공원에서 도시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 자유여행? 패키지 여행? 》
사회에서 홀로된 듯 익숙하지 않은 외로움이 싫고 소외된 것 같은 두려움이 느껴진다며 다함께 몰려다니는 패키지여행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회에서 이탈된 기쁨을 누리면서 홀로 다니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자유여행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慈遊到人 吾,謙螙.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삶을 갈구하기에 패키지보다 자유여행을 선호하지만 시간의 효율성, 합리적인 비용, 고령으로 인한 체력적 부담, 국외여행지의 안전을 고려하여 패키지여행을 선택하였다.
여행은 자유와 여유가 있어야만 가는 특별한 게 아니고, 내 삶을 멋지게 가꿔주는 단순한 행위 일 뿐이다. 앞뒤 재지 말고 즉시 떠나라. 뒤로 뒤로 미루면 몸과 마음이 늙어 실행하기 어렵다.
=====5월 중순 유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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